신지학입문 [신지학입문] 3.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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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6,799회 작성일 16-06-03 02:04본문
Read: 1145, Vote: 1, Date: 2004/06/26 18:33:13 , IP: 211.219.117.241
글 제 목 [신지학입문] 3. 신성
작 성 자 문성호
저자: C.W. 리드비터
번역: 김은경
번역: 김은경
신 성
신의 존재를 가장 우선시하며 가장 위대한 원리로 여긴다면, 수 없이 많이 남용되었지만 아직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이 단어를 정의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개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무지로 인하여 좁은 범위로 한정되어버린 원래의 훌륭한 개념(비록 실제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지만), 즉 종교의 창시자들에 의해 주어진 개념을 복원시켜야 한다.
또한 무한한 존재로서의 신과 이와 같은 지고의 존재가 드러나서 우주를 진화시키고 지도하는 현현한 신을 구분해야 한다. 이처럼 제한된 현현에만 "인격적인 신"을 적용시킬 수 있다.
신은 인격의 제한을 넘어서 있으며 "모든 것 안에 그리고 모든 것을 통해서" 존재한다. 진정한 의미로 모든 것이며 무한하고 절대적이며 전체이다. 그리하여 "그가 존재한다"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모든 실질적인 목적을 위해서 놀랍고 영광스러운 그(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서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의 구현, 즉 위대한 지도력 혹은 우리 태양계의 신(이를 로고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상으로 더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이는 진정하며 우리가 신이라고 예측해서 들어온 모든 것(선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때때로 신성 모독적인 측면에서 말하듯 신의 특성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덕을 부여할 수는 없다. 신은 모든 사랑, 지혜, 권능, 인내, 연민, 전지, 전능, 편재라 말해지며, 우리 체계의 로고스에게는 이보다 더 많은 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한다"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 이는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신은 당연히 로고스이다.
우리는 그가 있어 주었으면 하고 막연히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존재를 믿음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태양이 빛나는 것을 알듯이 그저 알뿐이다.
훈련을 받아 투시력이 발달된 사람이라면 이처럼 거대한 존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단지 인간의 발전 도상에서는 그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 공부했듯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곳에 있는 그의 행동과 그의 목적을 통해 우리는 그가 존재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찾는다. 사실 그것은 이 세계보다 상위의 측면일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종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접하게 된다. 일반적인 독자는 이 주제에 관해 설명한 많은 진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이해했을 때, 비로소 중요하며 빛나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태양 로고스의 사역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삼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종교에서 우리들에게 이미 오래 전에 가르쳐주었듯이 셋이면서 하나이다. 현 단계의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지능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명백한 신비에 대한 많은 설명은 앞으로 언급하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신은 우리 안에도 존재하며 밖에도 존재한다. 혹은 다른 말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신성의 에센스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말은 또 하나의 위대한 진리이다. 비록 모든 것에 눈멀고 오로지 외부의 낮은 세계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의견이 분분하지만, 삶의 보다 높은 측면에 대해서 탐구하는 학도라면 이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간의 혼과 그 다양한 매체의 구성에 대해서는 제 2의 진리라는 제목 하에서 논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인간의 본성은 신성하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과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신성한 차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신의 도식(圖式)
여기서 제시하는 것 중에서, 첫 번째 위대한 진리에서 도출되는 첫 번째 추론만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둘러보면, 많은 폭풍과 억압, 슬픔과 고통을 접하게 된다. 마치 선을 누르고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명백한 혼란이 실제로는 예정된 진화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세계의 투쟁으로부터 나오는 먼지의 구름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리고 풍부한 지식과 내적 평화의 유리한 고지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은 진리이다.
그러면 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기계의 참된 작용을 명백히 알게 되며, 진보의 흐름에 역행해서 범람하는 악은 단지 작은 소용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소용돌이는 표면상 아주 작은 것으로 점점 뒤로 물러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강은 수로를 따라 수면을 유지하면서 소용돌이들을 간직한 채 꾸준히 정해진 길을 흘러간다.
마치 이와 같은 위대한 진화의 흐름은 규칙대로 바르게 움직이며 작용하고 있다. 그것이 마치 무서운 폭풍우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표면에서 파도치는 물결 때문이다.
힌튼(Hintons)의 저서인 「과학적 로맨스(Scientific Romance)」 제 1권 18∼24페이지를 보면 또 다른 유추에 대해서 매우 훌륭하게 서술되어 있다.
우리들의 세 번째 위대한 진리가 말해주듯이, 진실로 절대적인 정의가 우리들 모두에게 나누어져 있어, 어떤 경우에 처해 있다하더라도 그 상황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일 뿐, 타인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보다 훨씬 많은 것도 알 수 있다. 즉, 진화의 법칙 아래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을 개발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이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며, 그 환경은 각자의 행적(이것으로 인해 때때로 가혹한 제약이 가해진다)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각자의 발전에 가장 적합한 것이다.
그 환경으로 인해 모든 종류의 어려움이 가해질 수도 있다. 그것은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배우고 내적으로 용기, 결의, 인내, 불굴의 의지 및 기타 결여된 자질을 계발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의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신들의 뜻에 역행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모든 것은 그들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교하게 짜여진 것이다.
신의 계획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몫일 뿐, 그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비록 사적인 흥미로 인한 것일지라도, 특정한 조건 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
인생의 목적이 이타적으로 되어 갈수록 다른 사람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 이해는 늘 필수적인 문제이다.
그러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남을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낼 수 있게 된다면, 지성적으로 이에 협조해야 하는 일은 의문의 여지없이 인간 진화를 위한 계획의 일부분이다.
이와 같은 신의 계획은 매우 훌륭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이해하게 되면 아무리 사소한 부분에 참여하게 될지라도 전력을 다해 그 일에 동참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일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주제에 관하여 보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독자는 애니 베산트(Annie Besant) 여사의 「비교적 기독교 신앙(Esotieric Christianity)」과 「고대의 지혜(Antient Wisdom)」, 그리고 필자의 소책자인 「기독교 신조(The Christian Creed)」를 참조하라.
이러한 개념에 대해 빛을 던져주는 것은 그리스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미드(G. R. S. Mead)의 「오르페우스(Orpheus)」와 그노시스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잊혀진 신념의 단편들(Fragments of a Faith Forgotten)」이 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물을 명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됨에 따라,
잘못이 저질러지고 있는 그 밑바닥에는
올바른 뿌리가 있다는 것을.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은 좀처럼 모르지만,
모든 슬픔에는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다.
태양이 아침의 문을 열어주는 것을 알듯이
모든 것은 최선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알게 되었다.
밤이 어둠의 장막을 드리우듯이,
악으로 빚어진 모든 행동은
언젠가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심적인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성장은 고통을 수반할 지라도
영혼은 구원된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은 최선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알게 되었다.
위대하고 영원한 계획 속에 실수란 없음을.
인간이 마지막 선에 다다르는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은 함께 일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영혼이 숭고하고 영원한 탐구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나는 지상을 돌아보며
"모든 것은 최선이었다"라고
말할 것임을.
(이 시는 미국의 어떤 신문에 익명으로 게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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